불완전함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완벽한 가족]을 읽고-
6살, 4살, 2살 세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방문해 도움을 받고 있는 맘스쿨이란 사이트에 서평단으로 참여하면서 읽게 된 [완벽한 가족](로드리고 무뇨스 아비아 글, 오윤화 그림, 남진희 옮김, 다림)은 어린이 책으로는 보기 드물게 스페인 문학이다. 주인공인 알렉스는 11세로 우리나라라면 5-6학년 정도의 남자이다. 그래서인지 권장 연령이 11-12세로 우리집 아이들에 비해 다소 높은 편이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6살 딸아이의 읽을거리 수준을 볼 요량으로 읽어주기용 책으로 선택해봤다. 아이들과 책 읽기를 진행하다보면 스스로 읽기 능력보다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능력은 훨씬 높은 것을 경험하곤 했는데 이 책 역시 그랬다. ‘가족’이라는 자신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주제로 접근했기 때문에 수월했던 것 같기도 하다.
딸아이는 처음부터 버릇을 그렇게 들여서 해서 그런지 제목을 읽고, 지은이, 그린이, 출판사, 표지그림 살펴보기 등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 유치원에서 세계 여러 나라 프로젝트를 하고 난 이후로는 작가의 나라를 지도에서 찾아보는 일도 가은이의 책 읽기를 즐겁게 하는 활동 중 하나다. ‘엄마 스페인은 어디야? 그런데 그림은 우리나라네’라고 날카로운 지적을 해온다. ‘응, 그러네’라고 대답하며 책에 대한 정보를 같이 읽어봤다.
[완벽한 가족]은 다림 세계 문학시리즈 중 하나로 몇 명 나라의 문학에만 한정된 기존의 세계 명작들과는 달리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들을 발굴하여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보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문학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각 작품에 전 세계 여러 나라의 화가들이 독창적으로 글을 해석하여 그린 그림이 다림 세계 문학의 또다른 특징이다. 그림은 작품의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는 같은 언어권의 화가와 작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각 문화권의 특성을 제대로 전달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글 못지않게 그림에도 눈이 오래 가는 책이다. 책을 읽어가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 자신이 주인공의 마음으로 들어간 듯하다. 글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면럼 그림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려졌다고나 할까. 가은이에게 책을 소개하면서 책의 글밥이 이제까지 읽던 책들과는 달리 아주 많다는 것을 알려주니 살짝 겁을 먹더니, 책장을 휘리릭 넘겨 보더니 독특한 그림들에 사로잡혀 눈빛에 호기심을 초롱거리며 글밥에 대한 부담을 대번에 날려 버린다. 그중에서 특히 콜라병과 케찹병을 양끝으로 배치하고 하단에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주인공을 그린 페이지에서는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줄거리는 이 책에 대한 다른 여러 리뷰나 출판사의 책 소개에서도 소개 되고 있음으로 생략하기로 한다.
며칠 밤에 걸쳐 잠자리 책으로 읽어주는 동안 딸아이는 언젠가 함께 읽은 적 있는 [틀려도 괜찮아](마카타 신지 글, 하세가와 토모코 그림, 유문조 옮김, 토토북)란 책 이야기를 떠올렸다. 엄마인 나는 스스로의 결점을 드러내거나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 같아 멋쩍었고 동시에 우리가족은 서로의 결점을 어떻게 드러내고 또 어떻게 안아내고 있나, 어떤 것이 건강한 가족상이며 어떻게 그런 가족이 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주었다. 책은 후반부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자신의 결점을 받아들이고 결점을 털어놓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식구들에게는 문제가 뭐가 되었든, 숨기지 않고 나누는 태도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라는 말로 불완전함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불완전함에 대한 가족의 역할에 대한 답을 준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결점을 드러내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우리는 더 큰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라는 말로 서로의 결점마저 결점 그래도 함께 안았을 때 비로소 온전한 가족이 된다는 결론을 보인다. 개인은 가족으로 확대되고 또 사회로 확대된다. 건강한 개인과 건강한 가족이 모여서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결점 혹은 불완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할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최근 방송되어 학부모들 사이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칭찬’이란, ‘평가’이며, 아이를 ‘조정’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지적하며, ‘잘한다’‘최고다’‘천재다’‘똑똑하다’라는 부모들이 즐겨하는 칭찬들이, 아이들에게 심히 부담을 줘, 목표달성 수준을 낮게 하거나, 심지어 부정행위를 유발시키고 또 ‘난 천재고 똑똑하니까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잘할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등의 역효과를 낳는다는 내용 등을 담은 EBS 다큐프라임 10부작 ‘학교란 무엇인가’-6부 칭찬의 역효과란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10부작의 마지막은 장식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좋아하는 것을 현재 하고 있다면 그게 성공한거 아닌가요?”라던 서머힐 졸업생의 마지막 한마디는 “그래, 맞아! 혹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일지도 몰라. 그러나 이 길만을 계속 간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잘못이라도 저질러 보고 싶었던 거야.”라고 책속 아버지의 말과 오버랩 되어온다.
[완벽한 가족]은 스스로 책을 읽으며 사고할 수 있는 초등 고학년은 물론이고, 책은 좋아하는 초등저학년이나 취학 전후의 아이들이라면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함께 읽으며 이야기 나누는 책으로 권할 수 있을 듯하다. 더 나아가 중고등학생이나 성인에 이르기까지 가벼운 읽을거리를 통해 한번쯤 꼭 짚어봐야할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더할 나위 없고.
완전이니 하는 주제가 조금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독후활동지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림에서는 단순한 내용 확인이나 주제 파악을 위한 문제식 활동지가 아니라 생각열기, 이야기 나누기, 읽기 후 활동까지 나와 있어 보다 깊은 읽기가 가능한 독후활동지를 제공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독자(혹은 청자)를 일러 처음에는 ‘너희들’이라고 하여 일반화하여 읽어가고 있었는데 중간쯤(43페이지 하단)에서 갑자기 ‘너’라고 하여 개인화하고 있어 읽는 동안 작은 혼란이 있었다. 스페인어를 몰라서 모르겠지만 영어에 빗대어 You라는 대명사를 복수로도 단수로도 될 수 있는데 어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 거라 나름대로 유추해 보았다. 능력이 된다면 원서로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이에게 읽어 줄 때는 청자를 이야기를 읽는(혹은 듣는)아이로 한정하고 문장 전체를 이야기체로 바꾸어 읽어 주었더니 무리가 없었다.
서평단 활동을 통해서 좋은 책을 읽게 되어 정말 기쁘다. 딸과 함께 읽으며, 서로 어려움을 느끼는 점이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서로 언제든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이야기 하고 혹 도움이 안되더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자고 약속할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출판된다는 다림 세계 문학 시리즈의 중국, 불가리아, 네델란드, 이란, 인도의 문학은 또 어떤 이야기로 어떤 생각거리를 제공할 지 사뭇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