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리거나 때려도 가만히 있고 상대방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고 혼자 놀려고 하는 43개월 남자아이

최명기(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정신과전문의/[좋은 부모 콤플렉스]저자)

원래 신체적 발달도 빠르고 말도 빠르던 아이가 나이가 들면서 의사표현도 하지 않고 점점 홀로 노는 것 같아지면 엄마는 걱정이 많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길게 말을 할 때 상대방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말을 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아이에게는 말을 걸지만 오히려 매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마주치는 친구들과는 말하지 않는 등의 양상을 보이면 엄마는 혼돈스러워집니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로 아이의 자신감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있지 않나 봐야 합니다. 두 번째로 뇌의 정서기능 및 인지기능의 발달이 더뎌진 것인 아닌지 파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타고 태어난 기질과 성격이 내성적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첫째로 아이는 세 살, 네 살, 다섯 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주변 상황에 대해서 의미와 맥락을 파악하게 됩니다. 예들 들어서 부모가 서로 다투는 경우 두세 살짜리 아이는 단지 시끄럽고 무서워서 울지는 몰라도 부모의 불화가 주는 의미를 파악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네 살, 다섯 살 나이가 들게 되면 십대 청소년처럼 명확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정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자꾸 싸우고 다투는 일이 있으면 아무리 엄마가 사랑해줘도 아이는 자신감이 저하되면서 소극적이 됩니다. 체벌도 아이를 소극적으로 만듭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스트레스가 됩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외부적 요인 때문에 아이들도 트라우마를 입게 됩니다. 친구들과 놀다가 우연히 시체를 목격한 아이가 한 동안 굉장히 위축되어 지낸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에 어린이집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가 있어서 아이가 심하게 불안한데 부모에게는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로 뇌에서 정서기능과 인지기능이 발달을 하는 것이 더뎌져서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발달장애라고 하면 자폐증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자폐증은 3세 이하의 어린 나이에서부터 언어적, 신체적으로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저하됩니다. 그러면서 반복적이고 상동적인 행동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발달을 하다가 나중에 퇴행을 하면서 발달장애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말도 잘하고 웃기도 하던 아이들이 점점 감정표현, 언어표현이 없어지면서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하고 역으로 퇴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극단적으로 발달장애 양상까지 이어지는 아니더라도 성장의 과정 중에 일정시기에 상대적으로 정서기능과 인지기능 발달 속도가 더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성적인 성격과 기질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아기에서 학령기로 이어지면서 아이의 성격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거든요. 그런데 기질과 성격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는 마음속으로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부끄럽고 왠지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지요. 아이가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를 잘 구별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43개월이면 아직 만 5세가 되지 않은 나이입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해보세요. 만약에 아이에게 가족내 혹은 어린이집에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가 있는 것 같다면 스트레스 요인을 없애고 아이가 회복하나 기다려보세요. 만약에 심리적 트라우마를 받을 만한 일이 있었다면 그 역시 조금 기다려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는 것 같으면 놀이치료나 미술치료가 도움이 됩니다. 정서인지발달의 문제인 경우는 만3세 이상이기 때문에 카우프만 검사를 비롯한 지능검사를 주기적으로 시행하면서 자녀의 인지기능 발달이 계속 이루어지는 지 체크해야 합니다. 만약에 또래 아이들과 사귀고 싶은 마음, 얘기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수줍음이 심한 기질과 성격을 타고 태어나서 그런 경우는 일단은 아이를 있는 그래도 받아들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격과 기질은 억지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꾸 아이에게 눈을 쳐다보고 말을 해라, 대답을 잘해라, 아이들과 어울리라고 말을 하면 아이는 더더욱 위축이 됩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어려서 내성적인 아이들도 청소년이 되면서 조금씩 사회성도 증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용기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명기(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정신과전문의/[좋은 부모 콤플렉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