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아이 학교로 가라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담당 교사 한 분에 학부모 한 명이 짝이 되어 시험 감독을 하는 제도가 있어서 딸 학교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엄마가 아닌 아빠가 시험 감독으로 등장하니 딸 친구들이 놀랐는지 웅성거렸다.

“어머, 윤진이네는 아버지가 오셨네요?”

담임선생님도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학부모 시험 감독 가운데 남자가 나 혼자였던 것이다. 괜스레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딸아이의 학교생활과 학습 환경이 궁금하던 차에 짬을 내서 학교까지 왔건만, 혹시 실수한 게 아닌가 싶었다.

“직장에 반차 내고 왔습니다.”

마음이 소심해진 나는 변명처럼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했다.

다른 모임이나 회의는 남녀구분에 민감한 나이는 아니지만 자녀의 학교이고 자녀교육을 책임진 선생님과 자녀친구 학부모님들은 처음 대하다보니 어색한 것은 당연했던 것 같다.

그래도 학부모로서 제 역할을 다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신학기에 학부모총회에는 많은 학부모님들이 오신다. 그러나 남자는 극소수나 없는 반도 많았던 것 같다

“아버님은 무슨 일을 맡아주셔야 할지…….”

“힘들고 귀찮은 일 있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부담 없이 맡겨주세요.”

나는 대답했다. 불현듯 엄마든 아빠든 제 아이 아끼는 마음은 다 마찬가진데, 나조차 이 상황을 불편하게 여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출퇴근 시간 교통정리, 애들 배식, 청소든, 학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정이 다 끝나고 나서 선생님들이 “어머니들 수고하셨습니다.” 했을 때 “여기 아버지도 있는데요!”하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어색하게 여기던 어머니 학부모들도 마음을 조금씩 열었다.

워킹맘이 많아지다 보니 학부모 시험 감독할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데, 아버지가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주니 아주 좋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 학교 일에 팔 걷어 부치고 나서는 아버지가 되었다.

우선 무엇보다 아이 동향을 파악하기가 좋았다. 아버지가 아이 학교에 방문하는 일이 흔치 않다 보니 아이에 대한 선생님들의 관심도도 높아졌다. 그래서일까?

학교를 방문하는 횟수가 늘수록 담임선생님뿐만 아니라 여러 선생님이 아이의 태도와 습관, 학업 성적, 성격을 두루 알려주었다. 자연스럽게 아이에 관한 양질의 정보가 늘었다. 덕분에 아이를 여러 각도로 보고 객관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눈도 생겼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아이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칭찬도 늘어갔다.

아버지가 학교에 오는 상황을 아이가 의식하게 된 모양이었다.

막상 자식 칭찬을 듣고 보니 세상에 그보다 더 행복하고 기분 좋은 일이 없었다.

학교에 직접 드나들면서 아이들의 환경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부모로서 바뀐 교육 환경을 정확하게 알아야 아이에게 적절한 지원을 해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수많은 회사 업무와 씨름하다 보니 따로 교육 정보를 찾아볼 여력까지는 없었다.

나는 학교 홈페이지나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 담임교사를 가까이 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교육 환경에 필요한 사항들을 습득했다.

딸이 영재교육원에 들어가게 된 것도 담임선생님의 조언과 추천의 결과였다.

아이를 영재로 만드는 데 극성 엄마가 필요한 것은 아님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아버지로서 아이 학교에 방문하는 기본을 다한 것만으로도 아이 인생에 좋은 기회가 생기고, 학업 성적도 향상되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