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전문가 고현숙은 주로 기업인이나 교육자를 상대로 강연을 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부모들을 향해 코칭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다. 아이가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하고 공동체 리더로 성장하는 데는 부모의 코칭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르치지 말고 코칭하라

“오전에는 LG전자, 오후에는 CJ에서 강의와 코칭을 하고 왔어요. 제가 주로 하는 일은 기업 리더들을 상대로 한 코칭과 리더십 트레이닝이에요. 기업 상대로 강의를 하다 보니, 좋은 리더와 좋은 엄마가 되는 것 사이에는 비슷한 요소가 무척 많았습니다. 특히 ‘코칭’에 관한 부분이 그래요. 코칭은 사람을 키우는 것, 직원을 성장시키는 것이거든요. CEO의 과제가 그렇듯 부모에게는 아이를 잘 성장시키는 게 과제잖아요. 그래서 학부모 코칭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녀가 코칭에 관심 갖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이다. 미국에서 열린 한 코칭 세미나에서 그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강연자가 강의 시작에 앞서 방청객 중에 지원자를 한 명 받아 무대 의자에 앉혔어요. 그리고 강연자는 ‘Manager(매니저)’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나와 ‘요즘 당신이 해결하려는 문제가 뭐냐’고 물었어요. 지원자가 이런저런 대답을 하니까 매니저는 ‘그럼 이렇게 해결하라’고 조언했죠. 잠시 후 무대 뒤로 사라진 강연자가 이번엔 ‘Coach(코치)’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나타났어요. 그리고 지원자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했죠. 지원자가 대답하자 코치는 ‘그럼 당신은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지원자가 답하니, ‘그럼 그렇게 하기 위해 어디서 뭘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런 식으로 질문과 답변이 오가자 지원자가 무릎을 치며, 빨리 적용해야겠다며 급히 사무실로 돌아가겠다고 했어요. 강연자가 매니저로서 대안을 제시할 때와 코치로서 지원자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만든 과정의 차이였어요. 후자일 때 더 즉각적인 반응이 왔죠. 코칭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아요. 스스로 답을 찾게 하죠. 일종의 자기주도학습인 셈입니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코칭이 매우 생소했던 당시 LG 전자 등 대기업을 상대로 코칭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다.

“기업 대표 및 임원들을 코칭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잘나가는 리더일수록 자녀들을 잘 코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집안에 완벽한 사람이 있으면 가족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재앙이 되기도 해요. 자신이 완벽하고 똑똑한 만큼 자녀도 그러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코칭은 안 하고 기대치만 높다는 게 안타까워요.”

우리나라 학부모만큼 치맛바람이 드센 나라가 있을까. 자식에 대한 부모의 ‘희생’은 당연한 것, 자랑스러운 것, 심지어 미덕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우리나라 부모들, 자녀를 정말 잘 키우고 싶어 해요. 근데 열의만 있고 방법을 몰라요. 별별 방법을 다 쓰지만 되레 아이의 자발성만 해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의도는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론 아이들을 힘들게 하죠. 그런 사례를 직접 접한 뒤로 코칭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다. 학부모 코칭을 시작하기 전, 그녀는 자녀들에게 코칭을 적용하면서 성공과 실패 사례를 모두 경험했다. 그 결과 ‘WHO-WHAT-HOW(누구-무엇-어떻게) 모델’이 탄생했다. WHO는 코칭하려는 상대가 누구인가를 파악하는 것, WHAT은 문제 혹은 이슈, HOW는 어떻게 해야 코칭받는 아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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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둘째 아들에게 적용한 코칭이 실패하면서 ‘WHO’ 단계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부모들은 목표를 향해 어떻게 나아갈까만 생각하는데 그 전에 WHO, 즉 아이의 개성을 파악하고 인정해야 해요. 둘째 아이가 산만하고 호기심이 많은 편이에요. 초등학생 때는 온 동네를 돌며 빈 페트병을 모아 뗏목을 만든 적도 있어요. 아이가 그걸 탄천에 띄워 직접 타고 돌아오면 사람들이 신기해 사진을 찍기도 했죠. 그러나 학교에서는 그다지 환영받는 학생이 아니었어요. 한번은 담임선생님이 인솔해서 견학을 갔는데, 목적지인 잠실역까지 다다르기도 전에 다른 역에서 내려버린 거예요.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나중에 선생이 전화로 ‘아이가 내 말을 무시하고 안 듣는다’고 하더군요.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엄마, 잠실까지는 노선이 여러 개잖아요. 한 노선으로 많은 인원이 가니까 시끄럽고, 자리도 없고. 다른 길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았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하지만 공동체 생활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저도 둘째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주려고 노력도 하고, 악필도 교정해주려고 무던히 애를 썼어요. 근데 잘 안 됐어요. 그때 알았습니다. 아이에게는 개성이라든지 타고난 경향이 분명 있잖아요. 그게 서로 맞물려야지, 절대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건 안 된다는 걸요.”

두 아이를 코칭해 온 11년간, 그녀는 마치 인격수양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누구의 잘못인지 뻔히 보이는 일도 아이 입장에선 어땠을까를 생각해보게 됐다. 아이가 왜 그랬을까, 무슨 사정이 있을까 하는 생각. 자기 위주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보려는 태도다. ‘참을성’은 이미 내성처럼 굳어진 지 오래다. 어지간해서는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특히 외국에서 코칭을 배우는 동안, 그녀는 우리나라 부모들과 외국 부모들의 명백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에 매우 인색하다는 거예요. 아이의 개성과 생각을 웬만해선 존중하지 않죠. 외국에선 아무리 작은 것도 인정해줘요. 아이가 사소한 것에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요. 자긍심이 있는 사람은 성숙하지만, 자긍심이 없는 사람은 문제를 일으켜요. 피해의식에 젖어 방어적이 되죠. 남이 조금만 지적해도 불 같이 화를 내요. 작은 잘못도 인정하지 못하죠. 반대로 자신감 있는 사람은 그러지 않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자신감을 길러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녀는 자신감을 길러주기 위해 아이의 말을 ‘경청’하고, 아이의 말을 ‘인정’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경청하지 않고 비판만 하면 아이가 남의 눈치를 보게 돼요. ‘이거 말해도 되나?’ 속으로 머뭇거리고 창피해하죠. 어른들이 아이들 보고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어깨 펴라, 당당해라, 자신감을 가져라. 근데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벌써 아이들을 주눅 들게 해요. ‘지적질’ 할 게 아니라 인정해줘야 해요. 그럼 저절로 피어나요. ‘인정할 게 있어야 인정해주지’, ‘뭐 하나 잘하는 게 있어야 인정해주지’ 식의 사고는 버려야 해요. 잘하면 인정해주는 게 아니라 잘하기 위해서 인정해주는 거거든요.”

그녀는 아이를 잘못 키울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있는 부모는 성급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모는 아이가 낙천적이고 자신감 있게 성장하기를 바라죠. 그렇다면 아이에게 ‘너 괜찮아, 너 훌륭해, 아무 문제없어’라고 말해주고 느긋한 태도를 보여줘야 하는데, 안달복달하는 순간 그렇게 되지 않아요. 부모가 아이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는 매우 중요하죠.”

입시 위주의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엄마들이 조급해한다고 나까지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그녀는 딱 잘라 말한다.

“마음만 급하니까 아이에게 자꾸 다그치고, 다그치고 나면 그래도 내가 뭔가 했다는 생각에 부모 스스로 안심해요. 공부를 하라고 해서 등 떠밀려 방에 들어간 아이는 공책을 찢어요. 겉으로만 복종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좀 더 느긋하게 자신을 믿고 아이를 믿어야 해요.”

자녀에 대한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어떨까. 그녀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려면 바라는 것도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희생’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희생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는 순간 집착이 되죠.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에서 멈춰야겠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라는 식으로 다그치면 안 돼요. 내가 주고 싶어서 준 것일 뿐이거든요.”

아이의 개성과 생각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훈육도 필요하다. 특히 ‘도덕’이 개입된 상황에서 훈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그녀는 강조한다.

“잘못된 행동을 방치하면 아이는 옳은 걸 배울 기회가 없어요. 잘못된 것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죠. 미숙한 나이엔 뭐가 옳고 그른지 모르니까요. 부모의 역할은 어떤 게 옳고 그른 건지를 알려주는 거예요.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는 ‘도덕’을 가르칠 때는 처벌 없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요. 꼭 매가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로 불이익을 줄 수 있죠. 최선을 다해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해요.”

그녀가 말하는 ‘가치교육’은 가치 중심적인 교육이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가치를 저버리면 결국 얻는 게 없다. 바른 가치를 가진 사람이 21세기가 원하는 리더로 성장한다고 믿는다.

“요즘 애들이 시험기간만 되면 종종 공책을 잃어버린대요. 복사 좀 하자고 그러면 안 빌려주는 아이도 많고요.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공책을 빌려준 아이의 부모는 왜 빌려줬냐며 혼내기까지 하죠. 잘 되려면 상대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사고방식 때문이에요. 하지만 21세기에 성공하려면 협력을 배워야 해요.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게 훈련되어야 해요. 조직에서도 나 혼자 튀려고 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죠.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남의 이익도 공동으로 챙기려는 것, 그게 바로 리더십이에요. 부모가 말로는 남을 도우라고 하면서 공책을 빌려줬다고 혼내는, 그런 이기적인 행동을 부추긴다거나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하면 아이들이 금방 알아요. 가치교육은 부모가 모델이 되어야 해요.”

그녀는 그러한 가치, 인성, 공동체적인 삶을 배우게 하기 위해 큰아이를 분당에 있는 대안학교에 보냈다. 처음엔 대안학교에 시큰둥했던 아들이 교실마다 건반, 쟁반, 강력반 같은 엉뚱하지만 재치 있고 기발한 이름표가 붙어 있는 걸 직접 보고 마음을 굳혔다. 그 아들은 올해 서울대학교 공과대에 입학했다.

“이성과 감성 중 감성이 훨씬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켜요. 확 불이 붙는다 해서 감정은 화학, 이성은 컴퓨터 같다고 말하죠. 아이가 어떤 일 때문에 감정이 상해 있으면 일단은 그 감정 자체를 함께 수용해줘야 해요. 슬퍼하고 속상해하면 ‘슬프구나, 속상하구나’ 해야지, ‘슬퍼한다고 뭐가 나아지냐?’라는 식의 반응은 하면 안 돼요. 감정을 해소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데, 이해하고 받아주지 않으면 아이는 감정을 호소할 데가 없어요. 감정이 수용되지 않으면 점점 쌓이고 울화가 치밉니다. 하지만 감정이 수용되면 그 다음엔 저절로 좋은 방향으로 가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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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원하는 것과 부모가 원하는 것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이 부분을 맞춰가는 게 WHAT의 단계다. 아이의 인생설계에 부모는 어떤 식으로 다가가고, 어느 선까지 관여하는 게 좋을까?

“노랫말에도 나오지만 ‘인생은 끝이 정해진 책’이 아니잖아요. 아이의 미래설계를 같이 고민하고, 아이가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설계도를 정확히 만들어놓을 순 없는 거죠. 설계하는 과정이 중요해요.”

그녀는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걸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도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상급자 앞에서 할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건 권리인데, 뒤에선 뒷담화하면서 앞에선 따지지도 못하고 참고만 있죠. 이야기하고 상의하고 협상하는 게 필요해요. 말콤 글래드웰(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저자)은 그걸 계층에 따른 차이로 해석해요. 상류층은 상대가 의사든 판사든 누구 앞에서도 내 의견을 당당하게 제시하도록 가르치고, 아이가 어른들의 대화에 끼는 것도 허용한다고 합니다. 반면 하층민들은 아이가 뭐라고 얘기하면 ‘시끄러! 네가 뭘 안다고 그래?’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거예요. 결국 그런 아이들은 어른 앞에서 조리 있게 자기 말을 하는 훈련이 안 되는 겁니다.”

이어 그녀는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의 말을 인용했다. ‘Stay foolish’. 항상 배고픈 상태로 있으라는 이 말처럼 그녀는 아이들에게도 풍족함이 아닌 결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Stay foolish, 난 더 배울 게 있고 열정이 있다는 말이거든요. ‘난 다 알아’라는 태도를 버리자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배울 수가 없으니까요. 우린 자녀를 서울대에 보내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이거면 됐지, 이 이상 뭘 더 해’라고 생각해요. 기업이 요구하는 걸로 치면 ‘헝그리 정신’이 없는 거예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의 자녀가 모두 서울대에 갔어요. 근데 그분은 자녀에게 그 이상으로 뻗어나갈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아이들이 계속 도전하게끔 북돋았어요. ‘넌 서울대 가서 뭘 할래, 그 좋은 머리로 어떤 것에 기여할 수 있겠니’라는 식의 얘기를 해서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든 거죠.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 그게 바로 Stay foolish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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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가 변해야 아이가 변한다’는 말로 HOW 단계의 설명을 시작했다. 부모가 취해야 하는 행동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가 경청, 둘째는 질문 그리고 셋째는 공감이다.

“사람들은 종종 듣기도 전에 자기 마음대로 추측을 해버려요.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어야 맞는 건데 ‘이래서 안 했겠지, 저래서 안 했겠지’라는 추측으로 아이를 판단하는 거죠. 먼저 경청하고, 질문을 던지고, 대답에 공감하는 것. 그게 바로 우리 부모가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고현숙은…

현재 한국코치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대한민국 1세대 코칭전문가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에서 MBA를 받았다. LG전자, 포스코, SK텔레콤 등 국내 유수 대기업 CEO 및 임원들을 일대일 코칭하며 조직 변화와 리더십 개발을 지원해왔다. 최근 두 번째 저서 《티칭하지 말고 코칭하라》를 통해 학부모에게 필요한 코칭이 무엇인가를 전하고 있다.

코칭전문가 고현숙의 학부모 코칭 Tip

1 훈계를 멈추고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라.

2 옳은 말보다 공감해주는 말을 하라.

3 아이의 눈높이로 삶의 기술을 가르쳐라.

4 판단은 유보하고 호기심을 경청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