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이는 1학년 입학했을 때 국어를 가장 힘들어했다. 한글을 다 배우고 간 게 아닌데 진도가 빨라서 정말 많이 속상해하면서 공부 따라가느라 허걱허걱 했던 것이다. 받아쓰기 성적도 0점부터 100점까지 받은 경험이 있을 정도로 들쑥날쑥 하고, 국어 숙제를 하느라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무척 버거워했다. 심지어 국어 때문에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직장에 다니느라 늘 아이에게 잘 챙겨주지 못 하는 엄마라서 아이에게 해줄 유일한 습관이 있다면 책을 즐겨 보도록 해주자는 다짐이었다. 그래서 아이와 약속했던 것이 매일 학교 끝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고, 그 책을 함께 보자고 했던 것. 아이가 처음 학교 도서관에 갔던 것은 학교 시설 이해하기를 배우던 3월이었는데 도서관에 다녀왔다고 이야기 하기에 도서관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을 해줬더니 거의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서 봤다.

그 중엔 당연히 글씨가 빼곡하고 꽤 오래 전에 나와서 문체도 술술 읽히지 않는 책들도 있어서 빌려온 책 중 대략 절반 정도는 책 속 그림을 훑어보거나 몇 페이지만 함께 읽고 돌려 보낸 책도 있었다. 그래서 2학기에는 책을 빌릴 때 사서선생님께 수준에 맞는 책인지 여쭤보고 빌리라고 권해줬더니 수준에 맞는 책을 곧잘 빌려와서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2학년이 된 지금은 거의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두서너 번 정도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대출해 온다.(지금은 학교 도서실 전산 시스템 정비 기간이라 20일 정도 빌려오지 못 하지만...) 올해는 아이 학교에서 받아온 학년별 권장도서 목록을 함께 보고 거기서 책을 골라서 빌려보라고 했더니 수준에 맞는 좋은 책들을 스스로 골라올 수 있게 되었다. 지난 해에는 읽은 책을 목록에 표시하지 않아서 빌려온 것을 중복해서 빌리거나 내가 헷갈려서 책을 사주는 실수를 하기도 했으므로 올해는 책을 읽은 후 독서록을 작성하여 간단히라도 책 제목과 지은이 등을 기록하도록 했다. 덕분에 책을 좀더 자세히 보려는 성향이 자연스럽게 베이게 되었다.

요즘에는 보는 책이 2학년 수준에 맞춰지면서 보다 두꺼워지고 글도 많아져서 빨리 책을 볼 수 있는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에 가는 것을 즐기는 것이라서 꾸준한 생활 습관으로 자리잡았다는 감사한 마음이다.

올해 아이는 교과목 중에서 국어가 가장 쉽다고 말하는데 왠간한 받아쓰기는 대부분 다 맞고(물론 연습해 가지만...^^) 국어 학습지를 심심풀이로 풀어보며 즐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아이가 문제를 푸는 것을 보니 우리 어른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뜻이냐 하면 "국어 문제는 지문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왼쪽에 있는 장문의 지문을 읽지 않고 바로 문제를 풀기 때문에 실제 지문과 다른 답을 찾는 경우가 간혹 있다.

예를 들면 "코끼리 코가 길어서 좋은 점이 아닌 것은?"이란 문제가 있는데 보기 중에 두 가지가, 문제만 봐서는 헷갈렸다.
1번은 "코가 가벼워져서 좋다" 5번은 "나쁜 친구들을 때릴 수 있어서 좋다"라고 되어 있는데, 아무리 친구가 나쁘다고 해도 때릴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을 답으로 하기도 그렇고, 코가 길어지면 무거워야 맞지 어떻게 가벼워지나 싶어서 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싶어서 지문을 봤더니 코가 길어져서 슬퍼하는 코끼리를 위로하려고 어떤 동물 아줌마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너를 놀리는 나쁜 친구를 때려서 혼내 줄 수도 있어"라고 말 하는 부분이 있었다. ^^;;
결국 아이는 지문은 읽어 보지 않고 바로 문제를 푼 것인데, 대개 지문에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문제만 읽어도 초등 저학년에서는 짐작으로 맞출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래서는 국어 문제가 아니므로 아이에게 설명해줬다. 우리가 국어 문제를 풀 때는 옆의 긴 글에 모든 답이 숨어 있는 것이니,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읽으면서 감정 변화가 나오는 부분, 이유를 말하는 부분, 상황이 변하게 된 계기가 되는 무엇이 나오는 부분 등등이 있으면 지문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두고, 등장 인물이 나올 때는 동그라미를 쳐서 미리 기억해두면 문제가 더 수월해진다고.

아마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국어"를 대충 훑어보고 대충 풀 것이다. 지문을 차근차근 읽고 답을 잘 찾는 아이도 많지 않을 것이고 문제에서 자신의 의사를 묻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심리를 묻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즉, 국어 이해력이 떨어진다기 보다 국어 문제가 갖고 있는 속성을 이해하지 못 해서 틀린다고 보는 편이 더 맞다. 하지만 지금 국어가 이런 것이란 점을 짚고 이해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나오면 아이가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할 수도 있으니 국어라는 교과목은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배우게 하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 말하기와 듣기 : 아이에게 상황이 표시된 다양한 그림이나 도표 등을 보여주고 내용을 이해하여 정리하여 말하도록 하는 것과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이해하도록 하는 것을 중심적으로 배운다. 책을 읽고 쓰기 형태로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말하면서 정리하도록 해주는 과정이 선행되면 보다 수월하게 쓰기를 할 수 있다.
★ 읽기 : 다양한 형태의 지문을 읽도록 한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문 이해가 중요하다. 학습지로 문제를 풀게 되는 대부분이 "읽기"를 통해 문장 이해, 내용 이해를 했는가를 중심으로 결과를 평가하기 때문에 꼼꼼하게 지문을 읽는 법을 아이가 배우고, 문장 내에서 주요한 어휘나 변화를 찾을 수 있도록 한다.
★ 쓰기 : 원고에 바르게 정서하는 법, 맞춤법, 띄어쓰기, 그 외 아이 생각 표현하며 쓰기 등을 다룬다. 문제에서 요하는 사항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대개 쓰기는 다양한 형식의 읽기를 통해서 좋은 교육이 가능하다.

아이와 함께 국어 읽기책을 읽으신 후 문제집을 아이 혼자 풀게 하면 이런 과정에 유의하지 않고 대충대충 문제만 풀 수 있다. 문제만 풀 경우에도 성적은 결코 바닥이 나오지 않는데 이유는 문제가 지문을 읽지 않아도 상식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저학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가 문제를 풀 때 옆에서 푸는 과정을 지켜보자. 그리고 아이가 틀리면 바로 답을 알려주시지 말고 아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먼저 들어보자. 위 교과 단계가 일종의 위계를 가지고 말하기, 듣기가 선행되는 이유처럼 아이가 쓴 답을 바로 결과로 보지 말고 아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아이나름대로 설명해보록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가끔은 획일적인 문제지가 가진 단점이 그대로 나타나서 정답을 꼭 무엇이라 할 수 없거나 우리 아이들이 푼 문제가 더 창의적일 수 있다. 이런 경우 난 문제들은 별표 해주고 어떤 사람은 아이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점만 알려준다. 그리고 엄마 생각은 또 어떤지 이야기해준다. 같은 문제를 아이가 풀게 되어 또 틀리더라도 아이 생각을 짓밟으며 외우는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와 그림을 보고 이해하는 문제를 아이가 전혀 다르게 이해해서 이럴 수도 있다고 설명해주고 "엄마는 네 생각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라고 말하며 별표를 그려줬더니 아이는 그게 틀렸다는 표시라고 생각했는지, 자기와 다른 답이라 속상했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억울해하며 다시는 문제를 풀지 않겠다고 항의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엄마는 왜 문제집의 답은 맞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은 틀리다고 하냐"는 것! 그렇지 않다고 말했지만 사실 획일적으로 공부해 온 엄마로서는 아이가 틀린 문제를 외우라고 해주고 싶은 상황이었는데 그냥 이럴 수도 있다고 설명하니 아이는 엄마 마음을 읽어버린 것이다. 그후 생각한 것 문제를 풀면서 맞추겠다고 생각한 게 아닌데 학습지는 확실히 고정관념을 심어줄 우려가 무척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더 다짐한다. 아이 생각은 확실히 존중해주자!

직장에 다니든 집에서 가사를 중심으로 하든 사실 주부는 시간이 거의 없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는지 아이 공부를 봐준다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아이와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내서  책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문제도 함께 풀어보자.(아이가 틀릴 수 있는 부분이 어딘지 알 수 있다) 매일이 어려우면 화, 목, 토 이렇게 주 3일 정도만이라도 아이가 공부한 것을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 생각을 다시 되짚어 보기 위해서 꼭 다시 읽고 생각하고 이야기 나눠 보자.

무엇보다 초등2학년 교과목에서 국어는 보다 어려운 문장 이해를 위해 도약을 준비하는 단계이고 쉬운 과정이라기보다 슬슬 워밍업하는 단계이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내공을 쌓듯 호흡을 맞춰 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