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 중간고사를 보고는 이니가 시험지를 가져왔다.

시험지 가져오기 전부터 성적을 적어와서 일단 점수를 알고 있었지만, 시험 문제 난이도며 이니가 틀린 문제는 어떤 것들인지 궁금해서 진작부터 기다렸던 시험지였다.

시험 성적은 본인이 그리 싫어한다던 사회가 88점, 국어 92점, 수학과 과학은 96점이라서 평균 93점이라고 평균점수를 계산해 놓았다. 사회에서 틀린 문제 하나는 자신이 문제를 대충 읽어서 틀린 것이라서 92점일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는 반응이지만 그 외의 점수들에 대해서는 아쉽지도 않고 별반 큰 반응이 없다.

점수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보려던 이니의 자세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이니는 시험은 '평소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 보고, 진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보는 것이 시험'이란 지론을 갖고 있는 초등 4학년이다. 그러므로 시험 전날 이니는 공부는 커녕 만화책 3권을 저녁에 빌려와서 잠 들기 전까지 그 책들을 보고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물론 다음 날 아침도 걱정과는 무관하게 TV 시청을 하면서 밥을 먹고는 시간 맞춰서 학교로 갔다.

내심 성적이 더 안 좋으면 제대로 혼내 볼까... 생각하던 나는 애매하지만 공부 안 한 것치곤 꽤 잘 본 편인 시험 성적에 대해서는 정말 더 이상 할 말을 잃게 되었다.

시험 성적이 중요한 것일까?

중요하다.

그 성적을 기초로 아이들의 교과목에 대한 선호도가 다시 생성되기 때문이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기초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아이들은 초기엔 과목에 대한 선호도가 특별히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각 과목에 대한 아이의 선호도가 차이가 나고 이것이 성적에서 나타나게 된다. 이 성적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아이에게 다시 feedback 되어 좋은 점수를 낸 것은 신통하게도 자신과 맞는 과목이라 생각하게 되지만, 성적이 낮은 과목은 차츰 뒤로 밀쳐두게 된다. 초등 과정은 학문의 기초가 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 때 선호도에 의해 교과목을 기피하기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편향적인 성향을 갖게 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아이의 적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초등 시기는 단순히 적성을 찾고 그 적성을 밀어주는 과정이 아니라 고르게 각 학문의 맛을 익히고, 학문의 골격이 갖춘 깊이와 구조를 이해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자랐을 때 인문적 소양이나 자연과학 소양이 양분되어 어느 한 쪽에 탁월한 인재가 되는 것보다는 자신의 최적의 학문 분야를 찾아 내되, 그 외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갖고 학문간의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끊임 없이 노력할 수 있는 기본 자질을 갖춰야 한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이런 과정을 열심히 공부하라고 이야기 하는 것보다는 아이의 성적에 따른 차이가 향후에도 아이에게 크게 적용하지 않도록 현재 미진한 과목에서 아이가 흥미를 끌만한 것을 교과 외의 체험이나 경험, 독서를 통해 늘려 주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초등 4학년 성적이 대학을 결정한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어떤 것도 운명처럼 아이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초등 4학 우수한 성적의 아이가 실제 대학에서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우수한 인재가 되어 줄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이 시기에 편향된 점수나 기호는 부모가 살펴보고 그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 고려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해줘야 한다. 물론 이 시기에 어설프게나마 자녀의 미래를 떠올릴 수 있기도 하지만, 아이만 변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도 변하고, 직업 환경도 변하며, 미래에 필요로 하는 인재상도 변하기 때문에 일단 집중이 아니라 균형을 갖고 즐겁게 배워나가도록 해주는 것이 초등 교과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잔소리로 이런 생각을 아이에게 전해야 하냐고?

No!

그건 절대 아니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마음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부모의 몫이지 아이의 몫이 아니다. 다만 부모는 더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