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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 | [경향NIE] 중학생용-[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조와 종의 차이

글쓴이 행.동.대장

등록일 2014-02-06 13:17

조회수 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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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NIE] 중학생용-[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조와 종의 차이

<자료1><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조와 종의 차이2013. 11. 06.

()와 종()의 칭호에 원래 우열이 없었습니다. 창업군주만이 홀로 로 호칭됐습니다.”

1619, 효종이 대행대왕(승하한 지 얼마 안돼 묘호가 없는 왕)의 묘호를 인조로 결정하자 홍문관 응교 심대부가 사납게 반발한다. “창업주만이 조가 되고, 계통을 이은 임금은 모두 종이 된다‘( )’의 원리를 지적한 <예기> ‘대전을 떠올린 것이다. 심대부는 한술 더 떠 세조와 선조가 를 칭한 것도 잘못됐다고 싸잡아 비난하면서, “‘중종의 예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효종은 조상의 묘호까지 들먹거린 심대부의 상소를 망령한 의논이라고 일축했다. 효종은 공이 있으면 조가 되고, 덕이 있으면 종이 된다<사물기원> 등의 언급, ‘( )’의 원리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종법이냐, ‘조공종덕이냐를 두고 그때그때 다른 해석을 내린 것이다. 세조의 경우 어린 조카(단종)를 폐하고 왕위에 오른 만큼 종법질서를 무너뜨렸다. 예종은 부왕이 죽자 대행대왕께서 단종을 몰아내고 이징옥·이시애의 난을 평정함으로써 재조(再造), 즉 나라를 다시 세운 공이 있다세조의 묘호를 끝까지 고집했다. 선조의 묘호는 원래 선종(宣宗)’이었다. 판서 윤근수 등 대신들이 대행대왕이 임진왜란을 극복한 공덕은 있지만 계통(명종)을 이어받았기에 이어야 한다고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광해군은 8년이 지난 1616, 슬그머니 부왕의 묘호를 선조로 바꿔버린다. 반면 중종은 반정의 공로에도 성종의 계통을 이었다는 이유로 가 아닌, ‘중종이 됐다. 아들인 인종이 장탄식했지만, 신하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조공종덕의 원리보다 아버지(성종)를 계승했다는 종법의 원리가 이긴 것이다. 아무리 조종의 차이가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어도, 임금들은 조()를 더 높이 쳤다(사진은 고종 묘호를 결정하기 위한 삼망단자). 영조·정조는 물론 순조까지도 줄줄이 의 대열에 합류했으니 말이다. 영종(영조)과 정종(정조)은 고종 시절, ‘의 칭호를 얻었다. 순종이 순조로 바뀐 이유는 서학의 유포와 홍경래의 난을 평정했다는 것이었다(1857).

장탄식이 나온다. 선조면 어떻고 선종이면 어떠며, 인종이면 어떻고 인조면 어떠리. 순종이면 어떻고 순조면 어떠리. 그 임금들 때에 백성은 어육이 되었고, 그들의 해골이 길바닥에 나뒹굴었는데.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05222924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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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 <예기> ‘대전을 보면 가계의 시조는 조()가 되고, 그 후예는 종()이 된다고 했다. 묘호의 조종은 이같은 종법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예기> ‘제법<사물기원> 등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도 나온다.

()이 있으면 조()가 되고, ()이 있으면 종()이 된다고 했다. 주나라 이전의 조종을 두고 후대 학자들이 단 주소(注疏·주석)을 보자.

무릇 조란 창업하여 세세로 전한 데서 나온다. 조란 공이 있고, 종은 덕이 있어 사당을 허물지 않는다.”

이것을 조공종덕이라 한다. 중국이나 우리나 새롭게 왕조를 열었던 초대군주는 태조 혹은 고조의 이름을 얻었다. 한나라는 고조, 북위····청의 경우는 모두 태조였다. 고려를 세운 왕건과 조선의 창업주 이성계는 모두 태조였다. 그런데 그 다음의 국왕들을 위해 짓는 묘호는 간단치 않았다. 종법을 따르느냐, 혹은 조공종덕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다.

국왕의 선호도, 그리고 권력세력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치열한 논쟁이 벌였던 것이다. 특히 덕이 있다()’보다는 공이 있다()’를 더 선호하는 바람에 숱한 이야깃거리들이 양산됐다. ‘인조의 묘호를 둘러싼 대간들과 임금이 벌였던 신경전이 단적인 예다.

국왕의 죽은 뒤 이름인 묘호는 국왕 사후에 뒤를 이은 신임 국왕과 대신들이 결정했다. 2품 이상의 대신들이 모여 삼망(三望)’, 3개의 후보를 올리면 신임국왕이 낙점한다. 사진은 고종 사후에 올라간 묘호의 3. 고종과 신종, 경종 등이 올라갔지만 수망(1후보)인 고종으로 결정됐다.

<자료3> 영조와 정조, 순조는 원래 영종, 정종, 순종이었는데, 훗날 의 묘호를 얻었다.

영종(영조)의 경우 승하한 지 113년이 흐른 1889(고종 26), 김상현의 상소로 영조가 됐다. 영조의 애민절검과 초기에 일어난 각종 변란(이른바 김일경 무고사건, 목호룡 고번사건, 무신란)을 진압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또 정종(정조) 역시 1899(고종 36) 고종이 황제에 즉위 한지 3년 만에 조상을 추존하는 의식을 행할 때 정조로 바뀌었다.

또 순조(純祖) 역시 처음에는 순종이었으나 1857(철종 8), 서학(천주교)의 유포를 막고, 홍경래의 난을 진압했다는 등의 큰 공을 세웠다면서 순조로 바뀌었다. 영중추부사 정원용의 말이 흥미롭다.

조와 종 두 가지가 모두 성대하고 아름다워서 처음부터 차등이 없지만, 후왕(後王)이 공·덕을 찬양할 때 특별히 뚜렷하게 드러난 것을 표현하여 칭호를 더하는 것입니다. 순종(순조)께서는 이단(異端)을 배척하여 정도를 지켰고, 서란(西亂·천주교)을 평정하여 큰 기반을 공고하게 한 것에 이르러서는 성대하신 공렬이 옛날의 제왕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났으니.”(<철종실록>)

정원용의 말에서 당시 보다는 의 호칭이 더 높임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료4> 1422(세종 4), 부왕이 승하하자 세종은 아무런 이의 없이 태종의 묘호를 올렸다.

원래 태종이란 묘호는 나라를 창업할 때 창업주(태조)와 함께 가장 공덕이 큰 사람에 붙인다. 중국의 경우 송나라 때부터 태조를 계승한 2대 국왕을 태종이라 칭했다.

하지만 조선의 2대왕(정종)은 태종의 묘호를 얻지 못한다. 대신 동생이자 3대왕인 정안군 이방원이 태종이 된다.

세종은 이미 부왕(태종)의 생전에 부왕의 만세 후에는 반드시 태종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세종실록>)

세종이 이렇듯 강조한 까닭은 부왕인 태종이 태조 이성계의 적통을 잇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부왕인 태종이야말로 태조 이성계를 도와 나라를 개국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의 적통은 태조-정종-태종이 아니라 태조-태종이라는 것이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http://leekihwan.khan.kr/263

[1-2] <자료1,2>을 읽고, 보기에서 알맞은 내용을 고르시오.

<보기> 예기, 종법, 조종공덕, 삼망

1. <자료1> 괄호 에 들어갈 내용은?

2. <자료1> 괄호 에 들어갈 내용은?

[3-5] <자료1>을 읽고, 물음에 알맞은 내용을 서술하시오.

3. 세조가 조()의 묘호를 갖게 된 이유는?

4. 선조의 묘호가 원래 선종이었던 이유는?

5. 중종이 종()의 묘호를 받은 이유는?

6. <자료2>를 읽고, 국왕의 죽은 뒤 이름인 묘호선정방법(누가, 어떻게)에 대해 서술하시오.

[7-8] <자료3>을 읽고, 다음 질문에 해당하는 내용을 보기에서 고르시오.

<보기>

. 서학의 유포를 막음 . 김일경 무고 사건 진압

. 목호룡 고변 사건 진압 . 홍경래의 난 진압

7. 위 <보기>에서 영조가 조()의 묘호를 받게 된 배경이 된 것은?

8. 위 <보기>에서 순조가 조()의 묘호를 받게 된 배경이 된 것은?

9. <자료4>를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세종이 부왕(아버지)에게 태종이라는 묘호를 올린 이유는?

조선의 북방 영토를 확장시켰다.

안정적인 왕위계승을 위해서이다.

정종의 적통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태조의 뒤를 이은 2대왕이기 때문이다.

[정답보기]

1. 종법

2. 조종공덕

3. 단종을 몰아내고, 이징옥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나라를 다시 세운 공이 있기 때문이다.

4. 임진왜란을 극복한 공이 있지만 명종의 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5. 반정의 공이 있으나 성종의 계통을 이었기 때문이다.

6. 2품 이상의 대신들이 모여 3개의 후보를 올리면 신임국왕이 낙점하였다.

7. ,

8.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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