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딸, 자녀 둘을 둔 엄마입니다. 아이 둘은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가끔은 이 아이들이 품에 안을 만큼 작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부모 마음이 그렇겠지만 어디 가는 시간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아이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 반과 지금처럼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 반을 품에 안고 사는 것이 부모의 마음 같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추억 중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배여 있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농부의 아내로서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물질적으로 지원해 주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교육을 위한 지원은 결코 아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장을 보다 가도 서점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받아 사 가지고 오곤 했습니다. 하루를 온 종일 놀아도 부족한 아이들에게 처음에 책은 짐 혹은 하기 싫은 일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책을 선물하되 반드시 읽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공부도 하고 싶을 때 아이가 스스로 찾아 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아이에 대한 무관심이 아닌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아이에게 마련해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달, 두 달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새 큰 아이(아들)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됐습니다. 아이 방에는 그 동안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이 확연하게 구분된 채 커다란 책꽂이를 다 채웠습니다. 기대한 것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읽은 책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엄마, 나 읽고 싶은 책 있는데... 아빠한테 말해서 사주면 안돼?”“우리 아들이 읽고 싶다는데 사 줘야지”

“그런데... 조금 비싼 것 같아”“그래 얼마인데?”“이십... 팔만원... 그런데 나 꼭 읽을께”그 당시 이십 팔만원이면 쌀 두 가마니 가격이었습니다.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읽고 싶어하는 책을 꼭 사주고 싶었습니다. 며칠 뒤 아이와 함께 책이 도착했습니다. 신사임당과 강감찬 등 우리나라 위인전집 50권과 뒤 따라 들어온 쌍안경과 지구본, 축구공 등 장난감 한 박스. 아마도 선물이 탐나 책을 산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예측한대로 아이는 책 보다 축구공과 쌍안경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책은 안 읽을거니?”“아냐, 엄마 조금만 놀고 읽을게” 반신반의 하면서 며칠을 더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한 달이 다 가도록 위인전집 50권은 책꽂이에 그대로 신사임당, 강감찬, 이순신... 그 많은 위인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곧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더는 참지 못하고 아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엄마와 한 약속 기억하지?”“응...”“그런데 우리 아들은 엄마 아빠하고 한 약속 별로 안 중요한가보다 그치?”“......”“엄마 아빠는 우리 아들이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해, 약속도 잘 지키고 무엇보다 엄마 아빠한테는 믿음직한 아들이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응... 알아”“엄마는 앞으로도 그럴거다, 내 아들이 갖고 싶어하는 거 놀고 싶어하는 거 다 해줄거야, 그리고 엄마는 믿는다 엄마와 한 약속 꼭 지킬거라고.”“알...았어”“역시 우리 아들은 똑똑해, 그리고 엄마는 믿는다, 우리 아들도 저 많은 책들 속에 있는 이름처럼 나중엔 큰 사람이 될 거라는 걸”“알았어 엄마, 나 정말 하루에 한 권씩 읽을게 그리고 나도 책 읽고 싶었는데...자꾸 친구들이 축구하자고 하니까 그랬어...미안”“그래 노는 것도 최고, 책 읽는 것도 최고로 잘하는 우리 아들, 엄마는 믿는다 알았지?”“오케이!”

그 일이 있은 후 아이는 방과 후 한 두 번 책을 읽는가 싶더니 이내 잠들기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도 되지않아 아이는 자기가 읽은 책을 한 권 두 권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다 되어서는 모든 책을 다 읽고 또 다른 책과 함께 선물을 사 들였습니다. 물론 남편과 저는 굳이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처럼 잘 먹이고 좋은 옷 사주지는 못해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는 아낌없이 지원해준다고 약속했으니까요.

책과 친구가 된 아이는 학년이 오를 때마다 성적도 함께 올랐습니다. 교과서를 책 읽듯이 읽고 매일밤 쓰는 그림일기의 문장력도 믿을 수 없을만치 좋아졌습니다. 가끔은 성적도 떨어졌지만 성적을 갖고 아이를 혼내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다만, 습관처럼 책을 읽고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것 이외에는 부모로서 더 이상의 욕심은 바라지 않았습니다.

책과 친해진 아이는 대학에 가서도 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국내문학 뿐만 아니라 해외문학에도 관심이 많은 아이는 먼 훗날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농부의 아내로서 아이에게 해 준 것은 정말 보잘 것 없습니다. 없는 살림에 유일하게 해 준 것이라고는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런 아이가 이제는 책을 먼저 찾아 읽고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골에 오는 날이면 예전에 제가 그랬던 것처럼 책 한권을 선물로 사 옵니다. 사계절 바쁜 농사일로 피곤한 몸이지만 어릴 적 아이가 지켜줬던 약속처럼 저 또한 책과의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부모가 원한 것을 스스럼없이 받아준 아이가 나중 어른이 되어서는 결국 부모에게 같은 습관을 되물림(?) 하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바른 교육이 곧! 나를 위한 교육’이라는 것을 세상 모든 부모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