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주 전 통영 여행을 가기 전날 아이들에게 통영 어느 곳을 가보고 싶은지 자신들의 방법대로 자료를 찾아 정리해서 말을 해보라고 한 적이 있어요. 아들이 6학년이 되자 솔직히 부모보다는 또래 친구들과 대화하고 노는걸 훨씬 좋아하는 걸 새삼 느끼는 요즘이였어요. 사실 그날도 부모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넓고 볼것도 많고 느낄 것도 많다는 신념으로 더 크면 여행을 함께 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여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자신들이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하면 그것대로 1박 2일 여행을 다닐 것이라고 했더니 아들은 약간의 흥미를 보이면서 이것저것 찾아 갈 곳을 파워포인트로 정리해서 보여주더군요.
그걸 보면서 더 이상 부모가 모든 계획을 세운 여행은 아이들에게 흥미가 없음을 알게 되었어요. 함께 여행을 할 아이들 스스로 주인이 되어 어느 곳을 가고 시간 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는 것 같았어요.
초등 고학년에게 가장 필요한게 어쩌면 스스로 생각을 하는 힘이 아닌가 싶어요.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어떠했냐고 물으면 늘 한결 같은 재미있었어요 라는 단답형을 내뱉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진정 지금 무엇을 원하고 무엇 때문에 하루 하루 살고 있는지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3학년 딸 애는 아직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며 혼자만의 생각이든 책을 읽은 느낌이든 내내 엄마와 대화를 하며 생각을 나누려고 하는데 6학년은 엄마가 꽉 안고 있는 팔에서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려는 것 같아 마음이 좀 짠했어요.
그러다 대화가 아닌 엄마의 일방적인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궁금하여 필요한 질문만 하고 아이에게 그 대답만을 강요하고 그 강요를 귀찮아서 눈살을 찌푸리며 대드는 톤의 목소리로 겨우 답하는 아들의 태도에 욱 하는 마음으로 말싸움이 시작되고...
그런데 너무나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머리가 갑자기 멍해지더군요.
<사춘기의 아이가 말대꾸를 하는 것은 삐뚤어지려는 것이나 부모를 우습게 보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저 성장하는 자아에 의해 자신의 욕구와 생각이 분명해지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라는 걸 잊고 아들을 부모에게 버릇없는 아들, 부모의 고마움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아들이라는 오명의 타이틀로 마음에 상처를 주고 벼랑 끝에서 매달려 있는데 밀어버릴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싸움을 아들 혼자 하고 있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어요.
간식 먹고 할 일 좀 하자고 하면 냉장고 열어보고 화장실에 대변을 보러 들어가서 한참동안 나오지 않는 아들에게 길어야 10분인데 그걸 못 기다리고 뭐하냐고 소리치던게 이제는 나올 때가 되면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엄마가 알고 싶은 걸 묻는게 아니라 아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많이 들어주려고 일부러 캐묻지 않으려고 해요.
아이들에게 부모라는 이름하에 정답을 단 한 번에 맞히기를 바라고, 좀 더 빨리 풀기를 바라는 감시자가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친구이자 선생님으로 조금은 객관적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려 해요. 그래야 아이들과 눈높이 대화가 통하여 세상사든 공부든 호기심을 갖고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해 보려는 탐구 정신을 버리지 않을 것 같아서요.
<서평 완료>
